순백의 발레리나들과 한없이 애절한 차이콥스키의 음악. ‘백조의 호수’가 낭만 발레의 상징이라면, 그 주역은 모든 발레리나의 꿈이다. 처연한 아름다움의 백조 오데트와 악마적 매력의 흑조 오딜을 2시간 반 안에 오가며 표현한다. 홍향기 수석무용수에게도 ‘백조의 호수’는 2010년 유니버설발레단 입단 때부터 가장 해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처음엔 너무 어상한종목 려웠어요, 지금도 어렵지만.” 지난 주말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막을 내린 ‘백조의 호수’ 무대에서 그는 스물두 번째 주역 무용수로 춤췄다. “같은 작품을 하게 되면 꼭 이전 공연 영상을 찾아봐요. 부족한 부분이 훤히 보이니까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려고 해요. 마음가짐은 늘 처음 무대에 서는 것처럼!” 시원시원한 미소가 홍향기답다.
‘백조의 호수’의 주역 발레리나는 백조 오데트의 애달픈 아름다움과 흑조 오딜의 마법 같은 매력을 한 무대에서 보여줘야 한다. 홍향기 수석무용수의 도도하고 자신감 넘치는 흑조 연기는 정평이 나 있다./사진가 김려원, 유니버설발레단
◇22번째 백조신천지릴게임 , 늘 쉽지 않은 도전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나와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한 뒤, 2015년 솔리스트, 2018년 수석무용수가 됐다. ‘돈키호테’의 발랄한 ‘키트리’, ‘발레 춘향’의 애끓는 ‘춘향’, ‘오네긴’의 격정적 ‘타티아나’까지…. 발레 팬들에게 홍향기는 이미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다. 그런 그에게도 ‘백조’는바다이야기주소 늘 쉽지 않은 도전. 흑조 오딜의 경이로운 32회전 같은 테크닉뿐 아니라, 연기 면에서도 그렇다. “백조 역할에 깊이 빠지면 한없이 우울해져요. 그런데 백조로서 1막이 끝나고 쉬는 시간 20분 뒤 바로 2막에선 도도한 흑조로 감정을 갈아타야 하거든요. ‘아, 어떻게 웃는 거였지?’ 하며 얼떨떨해질 때도 있어요, 하하.” 왕자를 유혹하는 pc게임 2막 1장 흑조 오딜의 파드되(2인무)에서 가장 자신감이 넘친다. 힘 있고 안정적인 테크닉, 도도한 ‘홍향기 표 미소’도 정평이 나 있다. “파드되가 끝나면 오딜에게 매혹된 왕자가 사랑을 맹세하죠. 그 순간 오딜은 왕자가 준 꽃다발을 집어 던지고 비웃으며 나가버려요. 10초쯤 되는 짧은 시간에 음악, 테크닉, 리듬까지 전부 맞아떨어질 때 엄청 희열을 느껴요.” 흑조가 왕자와 백조의 사랑을 무너뜨린 배신의 순간, 무대 위에 흩어진 흰 장미 다발이 순식간에 검게 변한다. 관객의 마음까지 뒤흔드는 흑조 오딜의 힘이다.
◇“내 안엔 오딜 70%, 오데트 30%” 무대 위 발레리나의 팔 동작 ‘포르 드 브라(port de bras)’는 백조의 날갯짓처럼 우아하다. 그 아름다움은 무용수가 견갑골을 쥐어짜듯 등 뒤로 모으며 어깨와 팔을 더 길게 뽑아내 인체를 한계까지 밀어붙인 결과다. 어릴 땐 처연한 백조 오데트를 표현하는 게 힘들었지만, 30대 중반을 넘어서며 슬픔의 표현에도 익숙해졌다. “춤을 출 때 느껴지는 감정에 충실하자고,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자고 생각해요. 연기하려 애쓰는 대신, 마음이 시키는 대로.”
어쩌면 백조 오데트가 ‘이상화된 여성성’의 총체라면 흑조 오딜은 반대로 ‘두려운 여성성’의 총체 같기도 하다. 자신 안에 오데트와 오딜은 얼마씩일까. 홍향기는 “오딜이 70, 오데트가 30 정도인 것 같다”며 웃었다. “오래 슬퍼하지 않는 성격이에요. 다 사이좋게 지내는 걸 좋아하고요. 자신감 있게, 즐겁게 웃는 오딜이 70%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30%의 오데트는? 그는 “제가 좀 꾸준한 편”이라고 했다. “오데트는 뭔가에서 굳이 벗어나려 애쓰지 않아요. 주어진 환경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간달까.” 홍향기 안에는 자신감 있는 70%의 오딜과 성실한 30%의 오데트가 함께 사는 셈이다. 오직 발레리나로 살아왔다. 그에게 발레란 뭘까. “지금 발레는 저에게 ‘책’ 같아요. 배우면서 쓸 수 있고, 읽을 수도 있으니까.” 그가 쓰는 책 ‘발레리나 홍향기’는 앞으로도 더 풍성하고 다채로워질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