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국
홈 > 문중역사 > 가락국
위로
 

 

마지막으로 살펴 볼 것은 수로왕의 성인 김씨와 관련된 것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큰 성씨(姓氏)가 김해 김씨(金海 金氏)입니다. 그 유래를 알아 볼 수 있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와 왕력(王曆)의 내용은 각각 다음과 같습니다.

거등왕(居登王)은 아버지가 수로왕이고 어머니는 허왕후이다. 개황력(開皇曆)에는 성이 김씨이니 대개 나라의 세조가 금란(金卵)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수로왕은 임인 3월에 알에서 태어나 이 달에 즉위하여 158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금란에서 났으므로 성을 김씨라 하니 개황력에 실려있다.

이 두 글에서는 수로가 금알에서 났기 때문에 김씨가 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는 이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 보입니다.

신라 사람들이 스스로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의 후손이라고 하여 金으로 성을 삼았고 유신의 비문에도 헌원(軒轅)의 후예요 소호(少昊)의 직계라고 하였으니 남가야(南加耶)의 시조 수로는 신라와 동일한 성씨이다.

중국의 ‘소호금천씨설’을 채용하여 신성성과 유구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개황력은 가야 멸망 이후 편찬된 것이고, 『김유신비문』 역시 7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보아 두 가지 기원설 모두 가야 당대에 이루어진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7세기 중반 이전에는 신라왕족과 마찬가지로 김씨성(金氏姓)이 칭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백승충>

 

현재까지 남아있는 자료에서 가락국 당대의 인물들은 『삼국유사』에 주로 왕실세계(王室世系)를 중심으로 그 행적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다른 기록에서 가야의 인물이 확인되기는 하지만 삼국유사와 같은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가락국은 기원 42년부터 532년까지 10대에 걸치는 왕들이 490년간 김해지역에서 세력을 영위하였다고 합니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시조(始祖)는 수로왕(首露王)인데, 42년 3월 알에서 태어나 즉위하여 이후 158년간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금빛 알에서 나왔으므로 성이 김씨였고 왕비는 허왕후(許王后)입니다. 김수로왕은 석탈해로부터 왕권을 도전 받기도 하였으나 이를 술법으로써 물리쳤으며 신라 파사왕의 요청에 따라 음즙벌국과 실직곡국 간의 분쟁을 조정해주기도 하였습니다.

2대 거등왕(居登王)은 수로왕과 허왕후의 아들입니다. 199년에 즉위해서 55년간 나라를 다스렸으며, 왕비는 허왕후를 따라온 천부경(泉府卿) 신보(申輔)의 딸 모정부인(慕貞夫人)입니다.

3대 마품왕(麻品王)은 259년에 즉위하였고, 왕비는 종정감(宗正監) 조광(趙匡)의 딸 호구부인(好仇夫人)입니다.

4대 거질미왕(居叱彌王) 또는 금물(今勿)은 291년에 즉위하였고, 왕비는 아궁(阿躬) 아간의 손녀 아지부인(阿志夫人)입니다.

5대 이품왕(伊品王)은 346년에 즉위하였고, 왕비는 사농경(司農卿) 극충(克忠)의 딸 정신부인(貞信夫人)입니다.

6대 좌지왕(坐知王) 또는 김질왕(金叱王)은 407년에 즉위하였고, 왕비는 도령(道寧) 대아간의 딸 복수부인(福壽夫人)입니다. 왕이 처음에 종살이하던 여자[傭女]에게 장가들었는데 그 여자의 무리를 벼슬에 두게 되니 나라가 어지러웠습니다. 이때 신라가 꾀로서 가락국을 치려하니 박원도(朴元道)란 신하가 왕에게 간했습니다. “점괘에 의하면 소인을 제거하면 군자(君子)인 벗이 와서 합심할 것입니다.” 이에 왕은 사과하고 종살이하던 여자를 하산도(荷山島)로 귀양보내고 선정을 베풀어 백성을 편안하게 했습니다.

7대 취희왕(吹希王) 혹은 김희(金喜)는 421년에 즉위하였고, 왕비는 진은(眞恩) 각간의 딸 인덕부인(仁德夫人)입니다.

8대 질지왕 혹은 김질은 451년에 즉위하였고, 왕비는 김상(金相) 사간의 딸 방원부인(邦媛夫人)입니다. 452년 허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왕후가 수로왕과 결혼한 곳에 왕후사(王后寺)를 세우고 밭 10결(結)을 바쳤습니다.

9대 겸지왕(鉗知王) 혹은 김겸왕(金鉗王)은 492년에 즉위하였고, 왕비는 출충(出忠) 각간의 딸 숙부인(淑夫人)입니다.




10대 구형왕(仇衡王) 혹는 구해왕(仇亥王)은 521년에 즉위하였고, 왕비는 분질수(分叱水) 이질의 딸 계화부인(桂花夫人)입니다. 532년 탈지(脫知) 이질금을 나라에 남겨두고 왕자와 장손 졸지공(卒支公)과 함께 항복해 신라로 들어갔습니다. 그의 아들로는 세종(世宗) 각간, 무도(茂刀) 각간, 무득(茂得) 각간이 있습니다.

<백승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