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시설에 수용된 중증 장애인도 아니고, 멀리 팔려가서 무임으로 일하는 염전 노예도 아니잖아요.”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45, 비례대표)이 지난 2월10일 ‘윤석열 방어권 보장 권고안’ 통과로 ‘내란 옹호’ 논란에 휩싸여 있는 인권위원들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 김 의원은 “대통령이 민주주의 저해하는 비상계엄 선포로 심판을 받는 상황에서, 방어권이라는 게 헌법 가치에 부합하는지 돌아봐야 한다”며 “안창호 위원장이 내란을 옹호한 게 맞는다면 거기에 걸 서브프라임대책 맞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2월11일 인권위 직원들이 전날의 ‘내란 옹호 안건’ 통과에 대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한 일에 대해서는 “인권위가 살아있음을 보여준, 고무적인 일”이라고 했다. 김예지 의원은 2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601호 의원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를 주제로 인터뷰했다. ‘내란 옹호’ 농협 예금담보대출 논란으로 사퇴 요구를 받는 안창호 위원장과 인권위원들에 대해 국민의힘 의원이 비판 입장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 의원은 안창호 위원장 등에 대해 직설적으로 묻자 “어렵고 가혹한 질문”이라고 조심스레 단어를 고르면서도 할 말을 다했다. 최근 지영준·박형명 변호사 등 국민의힘 추천 인권위원 후보가 철회된 일과 관련해서는 “인권 기준에 웰컴론 단박대출 조건 대해 생각할 계기가 됐다”며 “보수의 가치는 공동체 지속 가능성과 인간 존엄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보수와 진보의 인권 기준이 다를 수 없다”는 김 의원은 국민의힘이 다음 달 4일 국회 본회의에 새롭게 추천해 상정하는 인권위원 후보의 기준을 제시하며 “의견 수렴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르가 지난 2월11일 문정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인권위지부장(마이크 든 이)과 인권위 직원들이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방어권 보장 권고 의결과 관련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만 번은 더 누른 계엄 해제 찬성 버튼’ 한국은행 인사김 의원은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 국회로 들어가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하지는 못했다. 밤늦게 국회 앞에 도착했을 때는 문이 잠기고 주변이 장벽과 인파로 둘러싸인 뒤였다. 대신 다음 날 페이스북을 통해 “찬성 버튼을 백만번은 더 누른 것 같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후 반대 당론에도 불구하고 7일과 14일에 열린 국회 탄핵소추 표결에 참여했고, 채 상병 특검법 등 3대 특검법 표결에도 찬성표를 던졌다. 21대 국회에 이어 재선으로 활동 중인 김 의원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22대 국회에서만 벌써 88건의 법안을 발의했다. 올해 3월10일 기준 국민의힘 1인당 평균 25.1건, 더불어민주당 1인당 평균 29.2건에 견주면 세 배에 가깝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 중에서 제일 의미 있는 법안은 장애인보조견 출입 거부 시 거부 사유를 명확히 규정하고, 인식개선교육을 추가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과 자녀가 있는 예술인들을 위한 돌봄서비스 제공을 명시한 예술인복지법안이라고 한다. 중증 시각장애인인 김 의원은 점자 자료를 앞에 놓고 손으로 빠르게 훑으며 인터뷰에 응했다. 세 살 된 안내견 태백이는 인터뷰 내내 탁자 밑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었다. 1년 전 한겨레 인터뷰에서 정신장애인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고 밝혔던 김 의원은 요즘은 동물보호법을 깊이 파고 있다고 한다. 태백이 같은 봉사동물을 위해서다. 동물을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규정하도록 민법을 고치고, 은퇴 뒤에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는 구조견·탐지견·군견 등을 위해 동물보호법을 개정하려고 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 2월10일 윤석열 방어권 보장 안건에 찬성했던 인권위원들.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안창호 위원장, 이충상·김용원 상임위원, 강정혜·이한별·한석훈 위원. 이충상 전 상임위원만 3월1일 사직했고, 나머지는 현직에 있으며 인권위원 다수를 점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보수란 무엇인가? 다양한 니즈의 기본권 지키는 것 ― 김 의원님이 소속된 국회 상임위원회는 인권위를 관할하는 운영위원회가 아니라 보건복지위원회인데요. 평소 인권위를 관심 가지고 보셨는지요. “맞아요. 국회 운영위 소속이 아니라서 인권위에 대해 직접 질의하거나 그럴 수는 없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제가 관심 가져온 정신병원이나 요양병원, 시설 보호체계 안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서는 21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때부터 꾸준히 같이했어요. 인권위가 조사하는 정신병원 강제 입원이나 격리·강박 문제는 제가 참석하는 보건복지위 전체회의나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해왔고, 또 관계된 시민사회 단체들과 토론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관련 이슈들에 대해 입법이나 정책, 감사 등을 통해 세심하게 보고 있습니다. ― 인권이 진보의 전유물은 아닐 텐데, 보수에 인권이란 무엇일까요.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인권은 어떤 영역의 차원이 아니고 정말 기본 중에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수의 영역에서 말씀을 드리자면, 제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보수는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과 인간 존엄을 지키는 거거든요. 사실 보수는 ‘지키는 게’ 기본이에요. 인간 존엄을 지키는 거죠. 적어도 저는 보수 정치인이잖아요. (웃음) 사회 안전망을 튼튼하게 하고, 이 과정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분들의 인권을 지키는 게 당연히 보수 아니겠어요? 제가 어떤 인터뷰에서인가 ‘보수는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어봐서 ‘다양한 니즈가 있는 사람들의 기본권을 지키고 포용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거든요. 보수는 질서와 책임, 법치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질서에는 소외가 없어야 해요. 책임에는 배제가 없어야 합니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지난달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5회 대한민국 국회 의정대상 시상식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으로부터 우수입법의원 의정대상을 받고 있다. 가운데는 김 의원의 안내견인 태백이. 연합뉴스
지영준·박형명, 두 사람 행적 남아있어서 다행 ― 최근 국민의힘으로부터 인권위원 추천을 받은 지영준·박형명 변호사가 인권단체의 반발로 국회 본회의 선출안이 철회됐어요. 인권단체들은 최소한 성소수자 혐오나 내란을 옹호한 사람은 인권위원이 돼선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 사회엔 정말 다양함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이 있잖아요. 그 모두가 우리 국민인 거거든요. 그래서 인권위원이 특정 이념이나 진영, 종교를 대변해서도 안 된다고 봐요. 굉장히 보편적인 언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만 가지, 천만 가지의 다름에 대해 다 이해는 못 해도 적어도 배제나 혐오의 언어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인권위라는 게 준헌법기관이잖아요. 그러면 그 헌법에 나오는 기본권에 대한 이해가, 그 헌법에 나온 것 이상으로 높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거죠. 이분들이 계엄을 옹호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을 부정하는 그런 언행들의 흔적이 없었다면 (사람들이) 몰랐겠죠. 과거 행적이 남아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런 근거들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 철회된 거겠지요. 그걸 통해 다시 인권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서 굉장히 고무적입니다.”
25일 오전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 601호 의원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지영준·박형명 후보가 철회된 뒤 국민의힘은 오늘 4일 국회 본회의에 새로운 인권위원 후보 선출안을 올린다. 어떤 사람이 추천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인권위원 국회 추천이 4명이잖아요. 국민의힘 2인, 더불어민주당 2인입니다. 공평하게 몫을 나눴지만, 기준은 같아야 한다고 봐요. 국민의힘의 기준이 다를 이유가 없잖아요. 인권의 기준이란 굉장히 보편적인 헌법 가치란 말이에요. 혐오나 배제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이해하면서 여기에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이 있는 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가 이번에 반대 목소리를 내신 분들이 시민사회단체라고 알고 있는데, 그런 시민사회와 소통을 잘하는 분이면 좋겠어요. 인권과 관련된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분이거나, 그게 아니라도 최소한 시민사회 단체와 교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요.” 국민의힘 인권위원 추천, 사전에 의견 수렴하길 ― 예전에는 국민의힘에서 훌륭한 분들을 인권위원으로 추천하기도 했는데, 윤석열 정부 출범 뒤에 그런 분을 찾기 힘들다는 지적이 있어요.“국민의힘 안에서도 인권위원 추천할 때 기준이나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철회된 두 분 추천할 때도 저한테 좀 물어봐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웃음). 한 번도 안 물어봤어요. 100% 지지를 못 받겠지만, 많은 분이 공감할 수 있는 후보를 추천하도록 해야죠. 안 그러면 또 후보 낸 다음에 ‘왜 이렇게 비판받지’ 하다가 철회할 수 있잖아요. 창구를 열어놓고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있으면 해요. 인권과 관련해 일했던 분들의 조언을 받을 수도 있고요. 시민사회 단체는 우리 당이랑 좀 멀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그분들 의견도 수렴하고요. 마지막으로는 너무 법조인 위주로만 추천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맨 오른쪽)이 지난달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부산의 바다, 시민에게 열려 있는가?\' 토론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같은 당의 서지영 의원,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 조경태 의원. 연합뉴스
― 지금 인권위 위원장을 비롯해 일부 인권위원들이 가장 비판받는 이유는 지난 2월10일 이른바 ‘윤석열 방어권 보장 안건’(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관련 인권침해 방지 대책 권고 및 의견표명)이 통과됐기 때문입니다. 안창호 위원장을 비롯해 총 6명의 위원이 찬성했어요. 다음날인 2월11일에는 인권위 직원이 이런 안건을 통과시킨 일에 대해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인권위다울까요? “사실 수감자에게도 인권이 있고, 인권 차원에서 사형제도도 시행을 안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봤을 때 ‘방어권’이라는 말 자체가 잘못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상황을 봐야 하지 않을까요? 대통령에게도 인권이 있어요. 근데 이제 대통령이 심판을 받는 상황이었잖아요. 왜 심판을 받았나.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일을 저지르셔서 심판을 받는 상황이었어요. 물론 그래도 대통령에게 인권은 있어요. 그런데 국민들이 생각할 때 인권위가 지켜야 하는 게 대통령이었냐는 거죠. 당시만 해도 대통령은 대통령이었잖아요. 이분이 시설에 수용된 중증 장애인도 아니고, 멀리 팔려가서 무임으로 일하는 염전 노예도 아니었잖아요. 대통령은 뭐예요? 국군 최고통수권자 아닌가요? 국민들은 인권위가 이런 권력자에 대해 방어권이라는 말로 두둔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을 거 같아요. 당시 상황이 헌법적 보편성에 부합했는가 하는 거죠.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인권위 직원들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는 게 굉장히 고무적이에요. 인권위가 그나마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걸 보여준 게 바로 그 대국민 사과였다고 생각합니다.” ― 안창호 위원장이 잘하고 있다고 보세요? 현재 임기가 2년3개월 남았습니다. 그런데 안 위원장에게 ‘내란 옹호’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권위는 독립기구인데 정권이 바뀌었다 하여 인권위원장 바꾸라고 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이게 첫 번째 생각이고요. 두 번째로 이분이 인권위원장으로서 적합하지 못한 어떠한 근거가 있었는지를 좀 찾아봐야 할 거 같아요. 그래서 이분이 진짜로 계엄을 옹호했던 건가, 또 인권에 저해되는 발언을 했었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제가 미처 다 살펴보지 못해서….(웃음)”
윤석열 대통령 등 ‘내란죄 피의자’들의 방어권 보장 권고 등을 담은 안건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2차 전원위원회에 상정된 지난 2월10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윤 대통령 인권 보장’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인권위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에 대한 생각 ― 안 위원장이 계엄을 옹호했고, 지금도 인권에 저해되는 발언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인권위를 지켜보는 분들이 다 아실 거 같아요. 다만 비상계엄으로 국민이 인권이 침해받을 때 무리하게 대통령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면 거기에 맞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는 생각합니다.” ― 인권위에는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가 있고 차별시정국 내에 장애인차별조사1·2과가 있어요. 인권위의 장애인 차별 문제 진정 조사와 권고에 특별히 지적할 말씀이 있을까요? “사실 장애인 차별금지법만 봐도 권고가 시정으로 이어져 마무리되는 건이 굉장히 적어요. 그래서 정은경 복지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때도 말씀드린 적이 있거든요. 인권위는 독립된 기관이잖아요. 실무 과에서 조사관들이 조사하고, 그다음에 위원회에서는 그거를 이제 권고할지 말지 심의를 합니다. 그 절차에 굉장히 칸막이가 많다는 생각을 해요. 차별 실태를 조사하는 실무 조사관들과 이게 차별인지를 판단하는 위원들 사이에 얼마나 소통이 되는지도 모르겠고요. 그런 과정이 좀 더 긴밀하고 유기적이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또 권고해도 권고를 받은 쪽에서 이행을 안 하면 법무부로 가고, 거기서 시정 명령을 할 건지 말 건지 또 판가름이 나거든요. 저도 국회의원 되기 전에 인권위에 진정을 해봤는데, 진정하고 조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결정 기다리는 과정이 참으로 지난합니다. 이건 장애인 차별 사건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 마지막으로 한 말씀.“앞서 말씀드렸지만, 인권은 진보의 것도 아니고 보수의 것도 아닙니다. 인권은 우리 모두의 것이에요. 또 인권이 정치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저는 정치가 오히려 인권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인권위에 대한 이런저런 논란이 발생하고, 추천된 인권위원이 철회되는 것도 인권을 정치의 도구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정말 새롭게 진영을 떠나서 인권에 대해 정립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위 또한 그 흐름에 맞게 업무를 수행하면 좋겠습니다.”고경태 기자 k21@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