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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자의 유세장에서 지지 연설을 하고 있는 스콧 베선트. 노트북 거치 <이미지=abc뉴스 영상 캡처>
‘관세로 세수 확대·미국에 유리한 무역협상 타결·방만 복지 지출 축소’
막장 예능쇼를 예상했는데 리얼 다큐멘터리가 되고 있습니다.
기존 교역 질서와 내부 기득권을 거부하는 거친 트럼프표 경 전세자금대출 이자계산 제 공약들이 지난 6개월의 정권 개시 과정에서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며 현실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4월 초 상호관세 발표 때 미 국채 금리 발작 등 일부 동요가 있었지만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시장은 금세 진정을 찾았습니다. 새로운 질서에 시장이 빠르게 둔감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좌충우돌 트럼프의 미친 경제 정책을 반전세대출 질서정연한 현실로 만드는 ‘능력자’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요즘 언론이 매일 회자하는 이름,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63)입니다.
그가 초대 재무 장관으로 발탁될 때만 해도 이렇게 주도면밀하게 거친 트럼프를 관리하며 시장을 안심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지 몰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베선트 장관이 제롬 52주 적금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해임하려던 트럼프를 만류했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관해 거짓 기사라며 불쾌감을 토로했습니다. 베선트라는 참모의 설명을 들를 필요도 없이 “나는 무엇이 시장에 좋은지, 그리고 무엇이 미국에 좋은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능력 있는 실세 장관에 대한 트럼프의 미묘한 견제 심리가 읽힙 인정이자분개 니다.
리얼 다큐가 된 ‘관세로 세수 확대·미국에 유리한 무역협상 타결·방만 복지 지출 축소’는 트럼프 정책 이전에 베선트 장관의 평소 지론입니다.
작년 11월 미 대선 직전 그는 자연인 신분으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하며 이 세 가지 목표가 미국 경제에 가장 중요한 정책 목표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의 존 폴슨 등 다른 후보자를 물리치고 트럼프 2기 초대 재무 장관으로 발탁되며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습니다.
트럼프노믹스라고 읽지만 실질은 ‘베선트노믹스(Bessent-nomics)’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놀라운 속도와 주도면밀함으로 이 세 개의 화살을 과녁에 적중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작년 FT와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인위적인 약달러 정책을 펴지 않을 것이며 모든 국가에 20%의 보편관세를 매기는 공약도 실제 톤다운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를 미국 재정적자를 부추기는 파멸 기계라고 부르며 대대적인 축소를 암시했습니다.
9개월이 흐른 지금 세상은 그의 말대로 바뀌었습니다. 10%의 보편관세가 발효되고 현재 상호관세율 조정을 두고 미국은 세계와 개별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또 2분기 미국 호주머니에 세상에 없던 새로운 관세 수입 ‘65조원’이 생겼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의 물가는 생산자·소비자 양쪽 모두 잠잠합니다.
트럼프 취임과 함께 세상은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의 일명 ‘미란 보고서’에 주목하며 트럼프가 주요국과 일명 ‘마러라고 협정’을 체결해 인위적인 약(弱)달러를 유도할 것이라고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베선트는 이미 작년부터 트럼프 세계에서 인위적인 약달러는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실제 그가 장관이 되고 현재 미국은 어느 나라와도(특히 일본) 환율 문제를 무역협상 의제로 거론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요국을 상대로 환율 문제를 개선하라는 황제의 요구가 있었을 텐데 이 제갈량은 황제를 적절하게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베선트는 미국 경제를 가장 강력하게 만드는 환율의 흐름이 어느 한 방향에 치우치지 않은 ‘약한 듯 강한’ 상태임을 오래전부터 통찰한 월가 금융인 출신입니다.
반대로 바이든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죽일 것이라는 1년 전 그의 경고는 100% 살벌한 현실이 됐습니다.
IRA를 통해 지원하던 전기차 보조금과 친환경 관련 세액공제 혜택이 올해로 조기 종료됩니다. 대선 전부터 필요성을 인식하고 폐지를 공언한 정책에 대해 재무 장관이 돼 무관용으로 정책 조기 폐지를 이행했습니다. 안타깝게도 IRA에 기대어 굵직한 대미 투자를 단행한 현대차와 배터리 업체 등 한국 기업들이 최대 피해자가 됐습니다.
가장 놀라운 대목은 베선트가 IRA 폐지와 함께 공언한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 보장)와 푸드스탬프(식품보조) 대수술 계획입니다.
대중의 지지가 걸린 복지 재정 지출을 걷어내려는 계획에 공화당 내부 반발이 거셌지만 이마저도 관철했습니다. 최근 입법이 완료돼 트럼프 서명까지 이뤄진 ‘크고 아름다운 하나의 법안(OBBBA)’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메디케이드 예산 축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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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미 의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는 스콧 베선트 재무 장관. <이미지+CBS 영상 캡처>
트럼프가 스스로를 협상의 귀재라고 부르지만 베선트야말로 상대를 기분 나쁘지 않게 공화당 반대 의원들을 회유하고 마음을 돌리게 하며 설득의 달인 면모를 입증했습니다.
사실 운도 좋았습니다. 트럼프 2기 출범 후 무디스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이뤄지면서 방만한 복지 예산 축소가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진보적 주류 매체들은 OBBBA를 “저소득층에 타격을 주고 부유층에 기울어진 법안”이라고 프레임화하지만 베선트 장관은 재정 수술이 없다면 미국 경제에 대한 디폴트(채무불이행) 신호가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는 이코노미스트입니다.
참고로 피치 등 국제신용평가사가 미국의 신용 등급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트리거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바로 ‘거버넌스’의 이상 신호입니다.
의회의 부채한도 협상부터 대선에서 패배한 대통령의 퇴임 거부(트럼프 1기), 중앙은행인 연준의 독립성 위기 등 시스템을 움직이는 지배구조가 흔들리고 불균형을 이룰 때 신용평가사는 국채 신용 등급을 떨어뜨리고 전망을 긍정에서 부정으로 바꿉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연준 의장을 조기 해임하겠다고 엄포를 내놓을 때마나 베선트 재무 장관이 나서서 조기 해임은 없다고 진화에 나서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미국 경제의 진짜 위기는 재정적자가 아닌, 이 위험한 폭탄을 관리하는 미국의 ‘시스템’에 균열이 생길지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죠.
트럼프의 충동을 억제하는 베선트라는 제갈량은 미국민은 물론 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에게도 귀한 존재인 셈입니다.
트럼프 캠프에 합류하기 전까지 스콧 베선트는 월가 억만장자인 조지 소로스의 오른팔로 얼굴을 알리며 성공한 금융인으로 성장했습니다.
1990년대부터 소로스펀드의 최고 투자책임자(CIO)로 있다가 독립해 헤지펀드 회사 ‘키스퀘어그룹’을 설립했습니다.
1984년 예일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조지 소로스가 세운 퀀텀펀드의 런던사무소에 입사했습니다. 보수 진영에 몸을 담고 있음에도 성소수자로 남편은 전 뉴욕시 검사 출신입니다. 대리모를 통해 얻은 두 아이를 자식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그는 아베노믹스의 설계자인 하마다 고이치 예일대 명예교수와도 친분이 두텁습니다. 일찌감치 아베의 경제 책사인 하마다 교수와 교류하며 아베노믹스를 이해하고 향후 엔화 가치의 변화를 예측하며 큰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베노믹스가 성공할지 여부에 대해 정부와 시민이 협력해 국가 경제를 다시 살리려는 노력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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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경제 전문 매체인 ‘인터내셔널 이코노미’ 에 일본 아베노믹스를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있는 스콧 베선트의 글 표지. <이미지=인터내셔널 이코노미>
2022년 ‘인터내셔널 이코노미’ 가을호에 올린 글에서 베선트는 아베노믹스를 평가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본은 잘 대우해주는 곳으로 흘러간다(Capital flows to where it is treated well). 기업 지배 구조 개선 프로그램과 기타 주주 친화적 조치들을 통해 일본 자산은 전 세계 포트폴리오에서 다시 한번 중요한 역할을 되찾았다.”
트럼프가 일으킨 세계 경제 질서의 전복에도 지금 미국과 주요국 금융시장이 차분하다 못해 과열 랠리를 보이는 이유를 설명하는 이유는 “자본은 잘 대우해주는 곳으로 흘러간다”는 이 한마디에 있습니다. 지금 질서정연한 미국 경제를 트럼프노믹스가 아닌 ‘베선트노믹스’로 설명해야 하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이 탁월한 제갈량이 일본에 이어 한국을 상대로 막대한 희생을 바라는 무역협상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월가의 전설적 투자자인 스탠리 드러켄밀러는 작년 악시오스에 베선트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는 IQ(지능 지수)와 EQ(감정 지수)의 드문 조합을 함께 가지고 있다.”
베선트는 트럼프가 대선 과정에서 크게 신세를 진 일론 머스크와 정면 충돌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지난 4월 머스크가 베선트를 패싱한채 자신이 선호하는 인물을 미 국세청장에 천거했고 화가 난 베선트와 백악관 복도에서 설전을 벌였습니다. 이 사건이 있고 한달 뒤 머스크는 백악관 링에서 퇴장하며 테슬라 CEO로 복귀했습니다.
정치와 금융, 아베노믹스에 통달한 인물이자 호기·담력까지 갖춘 그의 월가 별명은 ‘조용한 킬러(quiet killer)’입니다.
이 지략가를 상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새로운 메가딜을 완성해야 하는 한국 협상팀의 수싸움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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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현지사간) 일본을 상대로 막대한 투자 유치 약속을 얻어내며 무역협상을 타결한 주역인 스콧 베선트 미 재무 장관(점선 안). <이미지=백악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