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하면서 내가 어떻게 뛰었는지 (기록을) 분석해준다면 기기와 조끼에 10만원 넘게 투자할 만하다 싶었죠. 그런데 기록을 분석해주는 애플리케이션(앱)을 갑자기 유료화해버리면 그냥 벽돌을 달고 뛰는 거죠.”
지난 6년 동안 축구 경기를 할 때마다 ‘사커비’(축구 데이터 분석용 장비)를 챙겼던 양아무개(44)씨는 이달부터는 집에 두고 다닌다. 사커비를 조끼에 달아 몸에 고정한 상태로 경기를 뛰면 속도와 이동 거리, 활동 범위 등 선수 개인의 모든 정보가 스마트폰 앱에 기록된다. 앱에서는 개인 기록을 분석할 수 있고 다른 선수들과 기록 경쟁도 할 수 있다. 적잖은 비용( 저축은행고금리 라이트 13만9천원, 프로 17만9천원)에도 사커비 국내 이용자가 단기간에 2만명을 넘어선 이유다.
그런데 사커비 제작사인 유비스랩이 지난 6월18일 그간 무료였던 앱 이용 방식을 8월1일부터 유료로 전환한다고 밝히면서 이용자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1인당 월 6.9달러(약 9600원)를 내야 기록이 저장된다. 결장
사커비를 구매한 뒤 수년간 무료로 앱을 사용해 온 이용자들은 금전적인 부담을 넘어 배신감을 느꼈다. 양씨는 “사커비에서 가장 중요한 게 기록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인데, 초기 이용자들은 일종의 테스터 아니었나 싶다”며 “유비스랩 입장에선 그동안 이용자들로부터 축적된 데이터 자체가 사커비의 제품 기능을 발전시키는 원 아웃바운드텔레마케터 동력이었을 텐데, 기존 이용자들은 다 털고 가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결국 지난 6월 이용자 130여명이 공동 대응에 나서려고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모였다. 채팅방을 만든 오아무개(31)씨는 “채팅방에 모인 사람 대부분은 구독료를 받는 자체에 반감이 큰 상황”이라고 전했다.
도고산유비스랩은 유료화 발표와 함께 기존 이용자들을 위한 혜택을 준비했지만 불만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유비스랩은 기존 이용자들에게 ‘얼리어답터 혜택’으로 △일정 기간 앱 무료 사용 △평생 구독료 반값 할인 등을 제공하겠다고 알렸다. 그런데도 이용자들의 불만이 이어지자, 3개월 이내 사커비 사용자에게는 구매금액의 60%를, 3~6개월 이내 사용자에게는 인테리어 업체 40%, 6~12개월 이내 사용자에게는 20%를 환불해주겠다고 공지했다. 그러자 1년 이상 사용해 환불 대상에서 제외된 장기 고객들의 불만이 커졌다.
활동 범위와 이동거리, 속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사커비 애플리케이션 화면. 독자 제공
사커비 이용자들은 유비스랩이 거짓·과장된 사실로 소비자와 거래하는 등 전자상거래법을 위반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민원을 냈지만, 공정위는 유비스랩의 손을 들어줬다. 공정위는 지난달 29일 “유료화 정책 및 환불 기준이 현행법을 명백히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회신했다. 과거 유비스랩이 ‘앱은 무료로 제공한다’고 안내했더라도 ‘유료화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보장한 적은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또 이용약관에 ‘일부 서비스가 유료화될 수 있다’고 명시한 점도 사유로 제시됐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모인 사커비 이용자들은 공정위 답변을 받고 허탈해 했다. 김영훈(36)씨는 “앞으로 이와 비슷한 스타트업 사례가 늘어날까 봐 걱정”이라며 민사소송까지 검토하자는 의견을 냈다. 3년간 사커비를 사용한 유석(44)씨는 “소비자는 정신적·물질적 스트레스로 고통스러운데 공정위 답변은 형식적인 처리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유비스랩 관계자는 한겨레에 “제품을 출시할 당시와 달라진 시장 상황에 따른 선택일 뿐, 고객을 기망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무료 앱을 결합한 제품을 판매한 뒤 어느 정도 이용자 규모가 확보되면 앱을 유료화하는 방식을 두고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나중에 유료화하더라도 소비자 설득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데엔 뜻을 같이 했다.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 교수는 “선택권이 없는 소비자가 원래 사용하던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구독을 강요당하는 ‘강제구독’ 사례일 수 있다”며 “이런 강제구독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불분명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성민 가천대 교수(경영학)는 “잠금 효과(제품을 바꾸기 어렵게 만드는 효과)로 묶인 상품의 가격정책을 바꾸는 것은 경영 전략 중 하나”라면서도 “비용이 급증하면 소비자 이탈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기업과 소비자가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종우 기자 whddn3871@hani.co.kr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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