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8-01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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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 사진=Gettyimagesbank.
“우리는 기계와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진보'는 지속돼야 하고, 지식은 절대로 억제돼선 안 된다는 관념에 감염돼 있다. 우리는 말로는 기계가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지 사람이 기계를 위해 만들어진 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계의 발달을 제어하려는 시도는 지식에 대한 공격이며 곧 일종의 불경으로 간주되는 것 같다.”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중)
동산담보 1936년 조지 오웰은 저서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기술 문명에 대한 고찰을 내놨다. “기계적 진보의 경향은 노고와 창조를 필요로 하는 인간의 본성을 좌절시킨다”는 그의 경고는 기술 문명으로 인간이 노동을 통해 얻는 삶의 의미가 위협받는 등 인간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기계와 기술을 통한 경제 성장은 결국 소수의 지배계급이 모든 권력을 간지원 갖게되는 또다른 노예제 사회가 될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장강명 작가의 르포르타주 신작 '먼저 온 미래'는 책 전체를 할애해 현재 시점 조지 오웰의 고찰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풀어낸다. 그 중심엔 이미 AI(인공지능)으로 생태계가 급변해버린 바둑계의 이야기가 상세히 담겼다. 우리는 2016년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바둑 AI 프로그램 소상공인지원협의회 '알파고'가 세계 최고의 프로기사 이세돌 9단을 꺾은 사건 이후, 바둑계 내의 혼돈의 변화를 얼마나 알고있을까? 김성래 6단의 표현에 의하면 “바둑은 AI에 의해 정복”됐다. 장강명이 바둑계를 '먼저 온 미래'의 표본으로 삼은 이유다.
장강명은 전현직 프로기사 30명을 심층 인터뷰해 AI 도입 후 변화한 바둑계의 모습을 물었다. 201 신협후순위대출 8년이 되자 프로기사들은 바둑 AI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훈련을 시작했고, AI가 제시하는 'AI 포석(초반에 돌을 놓아 진영을 만드는 일)'을 암기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 됐다. 기존 기사들의 '기풍'(바둑을 두는데 있어서 나타나는 각 개인 특유의 방식이나 개성)이 녹아있던 포석이 같아진다는 건, 모든 기사가 바둑을 비슷하게 두게 됐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은행 주택담보대출금리 수를 둘 때마다 AI가 평가하는 승률 수치에 따라 바둑을 두지만, 그 수가 왜 좋은 수이고 나쁜 수인지 이유는 알지 못했다. '얼마나 AI처럼 두는가'는 프로기사들의 실력을 평가하는 척도가 됐다. 인간이 쌓아올린 바둑 지식은 잊어야 했다.
▲ 2016년 3월16일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와 마지막 대국을 펼친 후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바둑 중계와 해설에도 수치와 막대그래프로 기대 승률을 표시하는 'AI 형세판단 시스템'이 도입돼 흡사 '경마 중계'처럼 바뀌었다. 누구나 AI 프로그램을 집에 설치할 수 있으니 인간 기사들의 공동 연구, 토론 문화도 희미해졌다. 인간 기사들은 학생들에게 AI 수법을 가르친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프로기사들은 바둑을 그만뒀다. 한 마디로 인간 중심의 '예술'로 여겨졌던 바둑은 AI 중심의 '스포츠 게임'이 됐다. 2019년 말 이세돌 9단은 바둑계 은퇴를 선언하며 그 이유를 “바둑은 둘이 만드는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AI와의 대결이) 무슨 작품이 되겠나. 내가 배웠던 예술 그 자체가 무너져 버렸다”며 “AI라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장벽 앞에서 느끼는 허무와 좌절”이 은퇴의 직접적 이유라고 말했다.
바둑계 안에서도 반대의 시각은 존재한다. '천재'에 대한 평가가 높은 바둑계에서 AI는 노력형 기사들에게 큰 도움을 줬고, 인간 기사들의 실력이 상향평준화됐다는 긍정적 반응이다. 장강명은 그들의 의견을 상세히 전달하지만, 어떤 부분에서 동의하기 어려운지 본인의 의견 또한 덧붙인다. AI로 인해 바둑계가 '민주화'됐다는 평가에 대해 AI 사용 능력을 척도로 또다른 계급 차별이 발생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바둑교육 현장에서 AI와 인간이 공존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주장에 대해 '인간은 보조인력의 자리로 물러났고 권위도 추락했다'고 지적하는 식이다.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깊은 곳에서 공감받는 느낌이 든 건 왜일까. AI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 말하면, 자주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 취급을 받곤 한다. 언론사 역시 경쟁적으로 AI 프로그램을 개발·도입하고, 어떠한 방법으로든 AI를 활용해 기사를 쓰는 게 '신식'이며 '유행'인 시대다. 그런 AI 기술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은, 마치 찬란히 앞서나갈 미래에 별볼일 없는 지적으로 취급받는다.
▲ 장강명 작가 책 '먼저 온 미래' 표지.
그러나 실제 AI는 필히 여러 부작용을 수반한다. 전 세계적인 AI 기술 경쟁으로 에너지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고, 이는 기후위기 대응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를 낳는다.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AI 데이터센터 증설은 화석연료 사용과 그에 따른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킬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오는 2030년까지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 중 'AI 전용'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가 현재의 네 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 예상했다. AI로 '대규모 해고-AI로의 대체'가 이뤄지는 'AI 실업'이 각 분야 곳곳에서 진행 중인 가운데, 누군가는 AI 훈련을 위해 저임금으로 성폭행, 학대 등의 정보들을 직접 보고 분류한다. 이들은 아무도 작업자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유령 노동'으로 불린다. AI를 활용한 대규모 허위정보 확산은 사회 전체의 신뢰를 흔들었다.
장강명은 AI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기후위기에 대한 태도와 비교한다. AI로 대표되는 기술 통제와 기후위기 대응은 그 필요성을 인간이 너무 늦게 알아차렸고, 경제 성장을 방해해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고, 정책 우선순위 차원에서 경제, 안보와 충돌하고, 누가 얼마나 책임을 져야하는지 명확히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AI로 인해 사라지는 인간의 가치가 되살아나지 못하는 것처럼, 기후위기로 인해 멸종된 생물종은 되살리지 못 한다. 바둑 AI 프로그램을 전부 금지한다고 해도, 프로기사들의 긍지와 자존심은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누군가는 장강명의 주장이 비약이라고 말한다. 여전히 인간이 기술을 만들었고, 인간이 기술을 지배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AI로 인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사회는 우리가 적응해 살아야 하는 환경 자체가 됐다. 기술의 방향성, 공적 통제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장강명은 AI 시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좋은 상상을 하는 것, 우리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 그렇게 미래를 바꾸는 것”이라고 썼다. 2016년 이후 바둑계에 '먼저 온 미래', 이를 보여준 장강명의 책은 인간에게 닥칠 '디스토피아'를 경고해 변화를 끌어낼 하나의 표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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