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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후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경남도립극단의 신작 'GOTT(신)' 진주 첫 공연. 무대 위로 설치된 간이 객석으로 환한 조명이 들어왔다. 아직 공연이 끝나기 전이지만 객석을 밝게 비춘 이유는 단 하나, 관객이 이 공연을 완성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경남도립극단의 신작 'GOTT(신)'는 조력 존엄사를 희망하는 78세의 리하르트 게르트너(양승한 분)를 중심으로 독일 윤리위원회 분양권매매계약 공청회에서 펼쳐지는 법적·의학적·신학적 논쟁을 그린 작품이다. 게르트너는 아내가 3년 전 뇌종양으로 병원에서 고통 끝에 모르핀에 취한 채 세상을 떠나자 삶의 의미를 잃는다.
2년여 심리 상담에도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한 그는 스스로 극단적 선택에 나서거나, 조력 존엄사가 가능한 인근 스위스로 향하는 방법도 대신 개인채무 모두에게 일어날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독일 식약청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독일 식약청은 게르트너의 몸과 정신이 건강하다며 조력 존엄사를 위한 약물 펜토바르비탈 처방을 기각하게 되고, 독일 윤리위원회는 전문가 초청 공청회에 나선다.
"나에게 더 이상 남은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소.(…) 그리고 언젠가 병원에 가서 노파심 내 목에다 호스 꽂고 억지로 숨 쉬고 싶지도 않고, 침을 질질 흘리고 싶지도 않고, 치매에 걸려서 기억을 잃고 싶지도 않아요. 난 지금껏 내가 살아온 것처럼 나답게 죽고 싶습니다."(게르트너)
조력 존엄사에 대한 법학·의학·신학적 논쟁이 팽팽하게 전개된 후 약물 처방에 찬성하는 변호사 비글러(장용철 분), 반대 수녀 하는 의사 켈러(윤재진 분)가 최후의 변론에 나선다.
"이건 한 사회의 발전된 모습, 진보가 아닙니다. 진보를 가장한 그저 패륜의 사회일 뿐입니다. 그 시작을 막아주십시오."(켈러)
"위원회 여러분. 죽음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죽음은 누구의 것입니까?"(비글러 삼국지 주유 )
100여 명의 관객은 이 공청회에 참여한 윤리위원으로, 극 중 치열한 논쟁을 지켜본 후 공연 말미 조력 존엄사에 대한 찬반 투표에 나섰다.
극 중 공청회를 끝내며 독일 윤리위원회 언론 홍보부 모니카 페어만 PD(박예선 분)가 투표를 요청하자, 관객은 저마다 공연 입장 당시 받은 하늘색 봉투를 꺼내 들었다. 객석에서는 "난 반댈세"라고 읊조리며 주사위를 투표함에 넣는 '윤리위원'부터 동행과 결과 예측을 주고받는'윤리위원'까지, 관객의 침묵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다른 연극 현장과 사뭇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다.
개표가 시작되자 객석의 '윤리위원'들은 물론 극 중에서 치열하게 조력 존엄사 찬반 논쟁에 나섰던 배우들, 객석 맨 뒤에서 무대를 내려다보던 감독까지 그 결과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개표 결과 조력 자살 찬성 48표 대 반대 59표라는 발표가 나오자 저마다 결과 분석에 나선 관객들로 객석이 웅성거렸다.
극 중 치열하게 찬성 논지를 펼쳤던 비글러 변호사 역 장용철 배우가 "반대가 많이 나왔네요"라며 아쉬움을 표하자 객석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
작품 원작 희곡은 독일 극작가 페르디난트 폰 시라흐의 'Gott'(독일어로 '신')로, 2020년 2월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가 의사의 조력 자살을 허용한 직후인 그해 9월 독일에서 초연됐다. 한국에는 경남도립극단 공연에 앞서 지난해 9월 서울에서 민간 극단이 선보인 바 있는데, 독일에서도 서울에서도 공연일에 따라 찬반 투표 결과가 엇갈린 것으로 전해진다. 경남에서는 15일 공연 외에도 이튿날인 16일 공연에서는 찬성 50표 대 반대 55표, 지난 5일 거창 초연에서도 찬성 44표 대 반대 48표로 모두 반대 우위의 결과가 나왔다.
연출을 맡은 최원석 예술감독은 "원작에는 생물학적·의학적 단어만 나오다 보니 찬성이 너무 많이 나올 것 같았다"며 "그래서 '조력 존엄사'라는 단어를 쓰는 등 바꿔봤는데 모든 공연에서 반대가 더 많았다. 아직 우리 사회는 생명에 대한 보수적인 듯하다"고 했다.
작품에서 최 예술감독의 해석이 가미된 부분은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이성적이고 건조한, 지극히 독일다운 원작 희곡이 감성적인 국내 관객에게 지루하지 않게 다가오도록 극 중 배우의 모습을 무대 위 화면으로 생중계하는 시도도 그중 하나다.
공연 시작 전 무대 중앙에서 객석을 향해 촬영용 카메라를 조준하고 있는 인물은 공연 기록용 스태프가 아닌, 극 중 공청회를 이끄는 PD로 공청회 내내 이 카메라를 활용한다. 카메라가 거치된 삼각대를 무대 곳곳으로 옮겨가며 극 중 논쟁에 나선 전문가나 관객 나란히 마찬가지로 '윤리위원회' 좌석에 앉은 게르트너, 그를 돕는 의사 브란트(김수현 분)의 모습을 클로즈업 해 무대 위 대형 화면으로 송출한다.
작품은 문명화된 언어는 모두 '신'이라는 단어가 있을 거라는 의도를 담아 독일어·한자·한국어·영어 등 4개 언어에서 '신'이란 뜻을 가져온 'GOTT_神(신)_GOD'라는 제목으로 공연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독교적 관점과 부딪힐 수도 있다는 극작가 의견을 수렴해 현 제목으로 변경했다.
비글러 역 장용철 배우의 오랜 팬 여희숙(서울·60대) 씨는 "경남에서만 볼 수 있는 공연이라고 해서 왔는데, 찬성과 반대 중 뭐가 더 많이 나올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다"며 "우리 사회가 존엄사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친구와 공연을 찾은 윤은설(창원·62) 씨는 "우리 나이에 많이 생각하게 되는 주제라 더 몰입해서 봤다"며 "평소 의미를 상실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있었던 만큼, 기존 가치관대로 약물 투여 찬성에 한 표 던졌다"고 했다.
한편 이번 작품은 2년 임기가 오는 8월 15일까지인 최 예술감독이 경남도립극단에서 선보이는 올해 마지막 신작이라는 점에서 특히 관심을 모았다. 많은 사람이 관람할 수 있는 대공연장 좌석이 아닌 무대 위로 의자를 설치하고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연극 바캉스' 특성상 공연당 관람객 수가 100석으로 한정돼 'Gott(신)'을 비롯한 모든 공연이 일찌감치 매진됐다. 공연 당일 예약 부도 표라도 구해보려 찾아온 이들이 찾아오면서, 일부 의자를 즉석에서 추가 배치하기도 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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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경남도립극단 'Gott(신)' 공연이 끝난 후 배우들이 관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배우들 뒤편으로 관객들의 주사위 투표 개표 현황을 중개하는 화면과 결과를 정리한 흰칠판이 놓여 있다. 사진=경남도립극단
경남도립극단 'Gott(신)' 공연 장면. 사진=경남도립극단
경남도립극단 'Gott(신)'. 사진=경남도립극단
